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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20). 임진강(臨津江) 방어선이 무너짐.
23/05/31 07:19:25 金 鍾國 조회 1109
20. 임진강(臨津江) 방어선이 무너짐.
韓應寅⋅金命元之師 潰于臨津 賊渡江.
初命元在臨津北 分付諸軍 列守江灘 斂江中船隻 悉在北岸. 賊結陣于臨津南 無船可渡. 但出遊兵 隔江交戰 相持十餘日 賊終不能渡.
一日賊焚江上廬幕*1) 撤帷帳載軍器 爲退遁狀 以誘我軍.
申硈素輕銳無謀 以爲賊實遁 欲渡江追躡 京畿監司權徵與硈合 命元不能禁.
是日應寅亦至 將悉衆追賊. 應寅所將 皆江邊健兒 與北虜近 備諳戰陣形勢 吿應寅曰「軍士遠來罷弊 尙未食 器械未整 後軍亦未齊到 且賊之情僞未可知 願少休 明日觀勢進戰.」
應寅以爲逗遛*2) 斬數人.
命元 以應寅新自朝廷來 且令勿受己節制 故雖知不可 而不敢言.
別將劉克良 年老習兵 力言不宜輕進 申硈欲斬之. 克良曰「吾結髮從軍 豈以避死爲心 所以云云者 恐誤國事耳.」憤憤而出 率其屬先渡.
我軍旣入險地 賊果伏精兵於山後 一時俱起 諸軍奔潰. 克良下馬坐地曰「此吾死所也.」彎弓射賊數人 爲賊所害 申硈亦死.
軍士奔至江岸不得渡 從巖石上自投入江 如風中亂葉. 其未及投江者 賊從後奮長刀斫之 皆匍匐受刃 無敢拒者.
命元⋅應寅 在江北望之喪氣.
商山君朴忠侃 適在軍中 騎馬先走. 衆望之以爲命元 皆呼曰「元帥去矣.」諸守灘軍 應聲皆散.
命元⋅應寅 還行在 朝廷不問.
京畿監司權徵 入加平郡避亂 賊遂乘勝西下 不復可止矣.

한응인(韓應寅)⋅김명원(金命元)의 군사가 임진강(臨津江)에서 무너지고 倭敵이 강을 건너왔다. 이보다 먼저 김명원은 임진강의 북쪽에 있으면서 여러 군사를 나누어 강여울에 벌여 서서 지키게 하고, 강 가운데 있는 배[船隻]는 모두 북쪽 언덕으로 끌어다 매어두게 하였다. 倭敵은 진(陣)을 임진강의 남쪽에 쳤으나 배가 없으므로 건널 수 없었다. 다만 유격병(遊擊兵 : 임기응변臨娜變으로 공격하는 병사)들만 내어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싸우면서 버티기 10여 일이나 되었어도 倭敵은 끝내 강을 건널 수가 없었다. 하루는 倭敵이 강언덕에 지은 여막(廬幕 : 兵舍)을 불태우고, 장막(帳幕)을 헐어치우고, 군기를 거두어 싣고 물러나 도망가는 모양을 보이며 우리 군사를 유인하는 것이었다.
신할(申碚)은 평소 행동이 가볍고 날카로우나 꾀가 없어서 倭敵이 정말로 도망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강을 건너 뒤쫓아가서 짓밟아 버리려고 하였다. 경기감사(京畿監司) 권징(權徵)이 신할과 합세하였으나 김명원은 능히 금지할 수 없었다.

이날 한응인도 또한 임진강에 이르러 모든 군사를 거느리고 倭敵을 추격하려 하였다. 한응인이 거느리고 있는 군사들은 다 강변(江邊)의 건아(健兒)들로서 북쪽 오랑캐와 가까이 있어서 싸우고 진을 치는 형세를 자세히 알고 있었으므로 한응인에게 알려 말하기를, "군사들이 먼 곳에서 오느라고 피로한 데다가 아직껏 밥도 먹지 못하였고, 기계도 정비하지 않았으며, 뒤따라오는 군사도 또한 다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또 倭敵이 물러가는 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사오니, 원컨대 조금 쉬었다가 내일 적군의 형세를 보아서 나가 싸우도록 하십시다." 하였다.

한응인은 군사들이 머뭇거린다고 하여 몇 사람을 베어 죽였다. 김명원은 한응인이 새로 조정으로부터 보내왔고, 또 자기의 절제를 받지 말라고 명령한 까닭으로, 비록 그것이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감히 충고하지 않았다.
별장(別將) 유극량(劉克良)은 나이 많고 군사에 익숙한지라, 힘써 가벼이 진격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 것을 말하니, 신할이 그를 베려고 하므로 유극량은 말하기를, "내가 어려서부터 군사가 되어 싸움에 따라다녔으니, 어찌 죽음을 피할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렇게 말씀드리는 까닭은 나랏일을 그르칠까 염려해서 입니다." 하고 분개하면서 나와 그에게 소속된 군사를 거느리고 먼저 강을 건너갔다. 우리 군사가 막 험한 곳으로 들어가려 하니, 적이 과연 정병을 산 뒤에 매복시켰다가 일시에 들고 일어나서 달려들므로 여러 군대가 무너져 달아났다.

유극량은 말에서 내려 땅에 앉으면서 말하기를, "여기는 내가 죽을 곳이다." 하고는 활을 당겨 적 몇 사람을 쏘아 죽이다가 적에게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신할도 또한 죽었다.
군사들은 달아나서 강언덕까지 왔으나 건널 수가 없어서 바위 위로부터 스스로 몸을 던져 강물에 빠지니, 마치 바람에 불려 어지럽게 날리는 나뭇잎과 같았다. 그리고 미처 강물에 뛰어들지 못한 사람은 적이 그 뒤로부터 긴 칼을 휘둘러 내려찍으니 모두 엎드려 칼을 받을 뿐 감히 저항하는 사람이 없었다.

김명원과 한응인은 강 북쪽에 있으면서 이것을 바라보고 그만 기운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때 상산군(商山君) 박충간(朴忠侃)이 마침 군중에 있다가 말을 타고 먼저 달아났는데, 여러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고 김명원으로 여겨 다 부르짖기를, "도원수(都元帥 : 김명원)가 달아났다."고 하니, 강여울을 지키던 군사들은 그 소리에 응하여 다 흩어졌다. 김명원과 한응인은 행재소(行在所)로 돌아왔으나 조정에서는 묻지도 않았다. 경기감사(京畿監司) 권징(權徵)이 가평군(加平郡)으로 들어가서 난을 피하니, 倭敵은 드디어 승리한 기세를 타가지고 서쪽으로 달려 내려왔으며, 이를 다시 막아낼 수가 없었다.

*1)여막(廬幕) : 시묘(侍墓)를 위해 상제(喪制)가 거처하는 무덤 근처에 지은 초막. 여사(廬舍). 려(廬) : ①오두막집 려. 초옥(草屋). 상제가 거처하는 무덤 근처에 지은 집. ②창자루 로.
*2)류(遛) : 머무를 류. 나아가지 아니하다. 遛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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